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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부모수기 " 절대 특수학교는 보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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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현욱 작성일09-01-10 09:41 조회4,8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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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집안의 맏며느리로 1년에 13번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는 나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은 1982년도였다.
전주에서 종가집 맏며느리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임신을 하고 나서 부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아이는 여자 아이였다. 시집에서 많은 눈치를 보게됐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한 자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임정이는 3개월이 지나고, 4개월이 지난 후에도 목을 가누지 못했다. 종손집의 첫 아이라 애지중지하며 키우는데 무슨 이상이라도 있을까봐 당장 병원에 달려 가 봤다. 그러나 의사들은 우리의 염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간단한 대답만 해주었다.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돌이 지난 임정이는 아직도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이상이 없다는 것이 더 이상했다. 83년에 종합검사를 하면서 염색체 검사까지 받아봤을 때 겨우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겨우 발견할 수 있었던 임정이 병의 원인은 신경 하나가 다른 신경 밑에 눌려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나 가늘고, 작은 신경이라 건드렸다가 다른 신경에 이상이 생길지 모른다고 수술을 못하게 했다. "어쩔 수 없지. 이게 내 운명이겠지" 하며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시부모님의 권유로 굿을 하게 됐다. 임정이가 나을 수 있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푸닥거리를 한 것이다. 임정이를 낫게 해달라고 손바닥을 비비며 절을 하고, 또 절을 했으나 간곡한 나의 소망으로 그저 소망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1984년. 전주에도 재활의학과가 생겨 물리치료를 받아보았다. 걷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앉을 수 있기를 하나, 자기 몸 하나 가누지 못했기 때문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임정이는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아파서 울고, 병원이 낯설어서 울고, 울음의 연속이었다. 아이가 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병원에서 임정이가 우는 것이 짜증이 났는지 얼마 다니지도 못하고 결국 쫓겨 나고 말았다. 병원에서 환자를 쫒아 낸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지만 나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임정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잖은가. 고민, 고민하다가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조그만 방 하나에 물리치료기구를 설치해놓고 물리치료사가 퇴근 후에 우리 임정이를 치료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고마운 치료사였다. 4년 정도를 쉬지 않고 그렇게 다녀주었고 그 결과 임정이는 어린아이들 걸음마처럼 걷게 되는 행운을 안게 됐다.
종가집 맏며느리라 남들처럼 소리내어 우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다. 더군다나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 기억으로는 딱 2번 사람들 앞에서 훌쩍거린 것으로 기억한다. 병원에서 종합검사 받은 후 결과를 들었을 때 아무 이상이 없고, 단지 신경 하나가 눌려서 그렇다는 말에 너무 허무해서 울었고, 또 한번은 시부모님 앞에서 임정이의 검사결과를 얘기하면서 울었다. 시부모님들은 적잖은 실망을 하셨다. 남자아이도 아닌 여자아이 인데다가 그것도 모자라 장애아라니...., 그런데 야속하게도 시부모님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자식은 또 낳으면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지금은 시부모님들 말씀이 수긍이 가지만 그 때 당시 나는 너무 섭섭하고 속상했다. 위로도 아니고, 임정이도 내 자식인데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너무 속상했다. 임정이도 불쌍했지만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불쌍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거울을 보며 불쌍한 나에게 쉴새없이 떠들면서 울고 또 울었다. "임정아, 넌 왜 태어나서 나를 고생시키니"라고 하소연하면서 말이다.
88년도에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전주를 떠나 서울로 타향살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종가집 며느리로서는 큰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시집살림을 내팽겨 치고 올라간다는 것은 시집에 대단한 반항이었다. 임정이를 위해서 말이다. 단 5년동안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임정이에게 차도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전주로 내려오라는 것을 전제로 허락을 받아냈다 그래서 우리 집 식구들, 임정이를 비롯해서 희정이, 소정이 모두 서울에 올라왔다.

장애가진 언니와 허물없이 지내
서울에 올라온 후 임정이는 취학통지서를 받게 됐다. 임정이를 학교에 보내야 했지만 마땅히 보낼만한 학교가 없어 특수학급을 찾아다니다 결국 첫 취학통지서를 받은 지 2년 후에 방일국민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둘째 희정이도 같이 입학을 하게 됐다. 특수학급이 있어 입학시킨 방일국민학교는 산꼭대기에 있어 경사가 급하다. 보통 아이들도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가야 하는 곳이어서 임정이에게는 더욱 힘든 난코스였다. 그래서 아예 학교 옆으로 이사해버렸다.
지금와 생각하는 것이지만 둘째 희정이는 임정이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해야 했다. 임정이를 위해 보육원에 다녔는데 임정이를 지켜보기 위해서 태어난지 9개월밖에 안된 아이를 안고 보육원에 함께 갔다. 보육원에 칸막이를 부탁해 칸막이 속에다 희정이를 눕혀놓고 난 전적으로 임정이에게 매달렸다. 유치원도 임정이가 6살 때 희정이가 4살이 됐을 때부터 다니게 했고, 될 수 있으면 희정이와 임정이가 함께 붙어 다닐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희정이는 언니 임정이를 잘 이해한다. 속으로야 임정이에 대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언니와 잘 어울려 다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셋째 소정이는 약간 깍쟁이다. 학교 갈 때 분명 세 명이 같이 나가는데 문을 나서자마자 소정이는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소정아, 아침에 왜 뛰어갔니? " "아니. 나 안 뛰었어" "엄마가 들었는데?" "학교에 빨리 가야돼서 뛰었어" "내일부터는 언니랑 같이 가라"
소정이는 국민학교 3학년인 자기보다 모자란 임정이가 귀찮은 지 종종 언니를 따돌리고 친구들하고만 노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불러놓고 물어본다. "얘들아. 너희 친구들이 언니를 무시하고, 놀리고 그러지? 그런데 너희가 언니를 무시하고, 멀리하면 그 아이들하고 뭐가 다를까?" " 그 애들은 남이고 우리는 형제지!" "형제니까 언니를 그렇게 대하면 안되겠지?"
임정이는 감각적인 기억력이 아주 뛰어나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나 음악을 한번 들으면 그 이후에 모두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나다. 보통 장애아들 중 예술계통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을 많이 본 것에 힘입어 임정이도 혹시 음악적인 재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가르쳐 보았다. 그러나 악보를 읽지 못해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예술적인 감각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미술도 시켜보았지만 별로 좋은 성과는 없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88년도에 자폐아동이 TV를 통해 방송된 적이 있었는데 당연히 관심이 끌려 열심히 보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임정이가 자폐아동이 손장난하는 것을 보고 금방 따라했다. 손장난을 못하게 했지만 금새 잊어버리고 또다시 손장난을 하는 임정이에게 "하지마, 나빠!"라고 얘기하면 임정이는 "하지마, 나빠!"하고 되묻곤 한다. 그래도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다행이다.
우리 식구들은 모여서 부담 없이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얘들아, 너희 언니가 없었으면 좋겠지? 그러면 너희도 편하고 엄마도 좋을텐데" "맞아" "그럼 어떻게 하지? 언니보고 죽으라고 할 수도 없고 우리가 잘해줄 수밖에 없잖아. 그렇지?" "그래. 그 말도 맞아"

특수학급 프로그램 개발 필요해
임정이와 희정이가 96년도에는 나란히 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임정이와 희정이는 이제 서로 다른 학교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임정이는 특수학급이 있는 서초중학교에 입학원서를 낸 상태이고, 희정이는 어느 학교로 배정될지 아직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정이가 서초중학교에 통학하기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너무 멀다. 조만간 희정이가 학교를 배정받으면 희정이와 임정이 두 학교의 중간쯤으로 집을 옮길 생각이다. 임정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세 아이를 모두 고려해야하니까.
집을 정신 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다른 아이들에게 희생을 감수하게 하면서 굳이 임정이를 일반학교에 보내려 하는 이유는 장애아동에게도, 특히 우리 임정이 같은 정신지체 장애우에게도 사회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지체아동이 비장애아동처럼 완전한 사회성을 갖기란 힘들지만 감으로라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아동과 함께 어울리면서 모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통합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특수학급은 일정한 프로그램 속에서만 운영되고 있었다. 국어, 산수 같은 과목 시간에는 특수학급에서 한글 가, 나, 다 쓰기 연습이나 자율학습으로 일괄되고 있고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 시간에는 무조건 본반에 가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정신지체 장애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국어, 산수, 음악 등의 교과서적인 과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쉬운 예로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나 화장실을 혼자 가는 법, 그리고 어른에게 말하는 법 등을 가르쳐야 한다. 물론 특수학급에 장애아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에서 지정한 특수학급에는 몇 명의 인원이 있어야 한다라는 규정을 따르기 위해 학습부진아도 함께 있다. 그리고 또 특수학급 선생님 모두가 특수학과 출신이 아니라 장애아동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아동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적어도 적절한 생활습관을 길러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장애아동이 있는 집에서 그런 노력을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함께 했던 생활습관이 학교에서도 지속적인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종종 주변의 사람들에게 " 왜 이렇게 심한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정신지체가 심해 아무리 한글을 가르쳐줘도 "가" 자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우리 임정이가 특수학교에 간다고 과연 변화되는 것이 있을까? 특수학교에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면 당장에 특수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못한다면 차라리 일반학교에서 비장애아동이 우리 임정이를 돌봐주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나중에라도 임정이가 엄마의 보호막이 없어도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첫걸음인 통합교육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임정이가 현재 걸을 수 있고 간단한 대화만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이지만 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임정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임정이와 희정이가 96년도에는 나란히 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임정이와 희정이는 이제 서로 다른 학교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임정이는 특수학급이 있는 서초중학교에 입학원서를 낸 상태이고, 희정이는 어느 학교로 배정될지 아직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정이가 서초중학교에 통학하기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너무 멀다. 조만간 희정이가 학교를 배정받으면 희정이와 임정이 두 학교의 중간쯤으로 집을 옮길 생각이다. 임정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세 아이를 모두 고려해야하니까.집을 정신 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다른 아이들에게 희생을 감수하게 하면서 굳이 임정이를 일반학교에 보내려 하는 이유는 장애아동에게도, 특히 우리 임정이 같은 정신지체 장애우에게도 사회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지체아동이 비장애아동처럼 완전한 사회성을 갖기란 힘들지만 감으로라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아동과 함께 어울리면서 모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통합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특수학급은 일정한 프로그램 속에서만 운영되고 있었다. 국어, 산수 같은 과목 시간에는 특수학급에서 한글 가, 나, 다 쓰기 연습이나 자율학습으로 일괄되고 있고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 시간에는 무조건 본반에 가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정신지체 장애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국어, 산수, 음악 등의 교과서적인 과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쉬운 예로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나 화장실을 혼자 가는 법, 그리고 어른에게 말하는 법 등을 가르쳐야 한다. 물론 특수학급에 장애아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에서 지정한 특수학급에는 몇 명의 인원이 있어야 한다라는 규정을 따르기 위해 학습부진아도 함께 있다. 그리고 또 특수학급 선생님 모두가 특수학과 출신이 아니라 장애아동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아동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적어도 적절한 생활습관을 길러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장애아동이 있는 집에서 그런 노력을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함께 했던 생활습관이 학교에서도 지속적인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종종 주변의 사람들에게 " 왜 이렇게 심한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정신지체가 심해 아무리 한글을 가르쳐줘도 "가" 자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우리 임정이가 특수학교에 간다고 과연 변화되는 것이 있을까? 특수학교에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면 당장에 특수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못한다면 차라리 일반학교에서 비장애아동이 우리 임정이를 돌봐주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나중에라도 임정이가 엄마의 보호막이 없어도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첫걸음인 통합교육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나는 임정이가 현재 걸을 수 있고 간단한 대화만이라도 가능하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이지만 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임정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구술 윤은희
정리 김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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