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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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애란 작성일05-10-14 15:31 조회3,009회 댓글0건본문
지난 13-14일 목포에서 CCF 소속시설의 원장 모임이 있었습니다.
CCF는 사회복지기관인 한국복지재단의 전신인 '기독교아동복리회'라고 하는 한국전쟁 후 한국의 고아들을 돕기 위한 외원단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외원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됨으로 외원단체들이 하나둘씩 철수할 때 '어린이재단'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의 '한국복지재단'으로 바뀐 모체입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외원단체는 없어졌지만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회원단체로 남아 아직까지 지속해오고 있는 53년째의 총회에 다녀온 것입니다.
회의도 회의지만 목포는 제주도 수학여행가느라고 배타러 들른 몇십년전의 잠깐 방문 외에는 서해안 쪽으로 특히 대천 밑으로는 거의 가본 일이 없어 많이 궁금했었고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귀경 열차표는 예매를 하지 않았고, 끝나면 그 쪽을 좀 돌아볼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계획은 없었지요.
목포의 부두가에는 사공의 뱃노래는 없었지만 '목포의눈물'이라는 노래가 부두가에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생각이 같은 원장님들이 있어서 함께 차를 렌트하여 땅끝 해남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기로 하였지요. 모임이 12시에 끝났는데 다섯명이 저녁8시까지 쏘다니다가 서울 집에 오니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KTX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간만에 많이 웃고 재미난 여행이었습니다. 일행 중에는 8순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 원장님도 계셨지요. 연세가 드셨지만 곧곧한 정신으로 사시는 분이라 다니는 중에도 절대로 젊은 사람들에게 기대는 부분이 없는 정신이 살아계신 분이셨습니다.
이번에 참석한 회의는 많은 분들이 80대가 되어가는 원장님들이 계시는 모임이라 행동거지가 조신해야 했습니요. 대부분 권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어서 예배와 기도를 많이 드린 귀한 시간이었지요. 열심히 일하다가 곱게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느꼈지요. 저도 그런 세월을 보내고 그런 노년을 맞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신앙으로 아이들을 키워내고 이 사회에 공헌하신 분들이셨습니다.
감사와 찬양과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셨습니다.
대부분 시설도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분들이라 3년마다 받는 평가에서도 상위 그룹이라고 들었습니다. 경륜이 있는 시설의 저력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우리 시설도 54년이 된 시설입니다. 책임감이 새삼느껴져옵니다.
한국복지재단의 전임 차윤근회장님은 88세이십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높아 많은 20대의 부부들이 이혼을 하는데 이들 자녀 중 60% 정도가 아동 시설로 들어와서 시설의 생활을 하게 되는데 천리마를 알아낸 백락처럼 재목을 키우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회복지학과 대학교수로 계시는 분이 얼마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00대학교 교수 박사000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그래도 존경하는 눈빛으로 대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지역사회의 복지관 관장을 겸임하게 되어 인사를 할 때 '000복지관 관장 000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처다보는 눈빛이 약간은 경멸의 눈빛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수님께 '우린 늘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산답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무척 씁쓸했습니다.
가끔씩 언론매체의 뉴스감이 되는 사회적 지탄을 받는 분들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자업자득이 아니냐고 반문 하겠지만 노심초사 맡겨진 사람들을 잘 보살펴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다가 지역사회에 보통의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도록 돕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맞는 분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게 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아픔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삼성복지재단에서 사회의 모범된 분들께 주는 '호암상'을 받으신 지득용원장님은 '부부가 마주보며 서로 사랑하기를 다짐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부부는 결혼하며 마주보기보다는 나란히 앞을 보자고 다짐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아가 된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자신을 헌신해야만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상금으로 퇴소한 자식들이 찾아와 쉴 수 있는 집을 짓는데 사용한다고 하여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회를 기다려봅니다.
오늘 KBS-TV 의 모모 부장이라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월드뉴스지구촌소식'이라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화보집이 나왔으니 들여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설은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그 화보집을 볼 사람들이 없다고 하였더니 누가 장애인들더러 보랬냐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보라고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원장이 보라는 것입니다.
원장인 저는 그 화보집이 필요가 없다고 하였더니 시설에서 들여놓으면 될 것 아니냐며 막 화를 내는 것입니다. 책을 팔면서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압적인 자세로 들여놓겠을 것을 강요하며, 들여놓지 않다고 하니 화를 내며 무서움을 느끼게 할 수는 없을텐데 전화를 먼저 끊을 수도 없을만큼 화를 내어 두려워서 들고 있었더니 씨근대며 끊는 것입니다. 사회복지시설의 원장은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아주면 고맙겠습니다.
CCF는 사회복지기관인 한국복지재단의 전신인 '기독교아동복리회'라고 하는 한국전쟁 후 한국의 고아들을 돕기 위한 외원단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외원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됨으로 외원단체들이 하나둘씩 철수할 때 '어린이재단'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의 '한국복지재단'으로 바뀐 모체입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외원단체는 없어졌지만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회원단체로 남아 아직까지 지속해오고 있는 53년째의 총회에 다녀온 것입니다.
회의도 회의지만 목포는 제주도 수학여행가느라고 배타러 들른 몇십년전의 잠깐 방문 외에는 서해안 쪽으로 특히 대천 밑으로는 거의 가본 일이 없어 많이 궁금했었고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귀경 열차표는 예매를 하지 않았고, 끝나면 그 쪽을 좀 돌아볼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계획은 없었지요.
목포의 부두가에는 사공의 뱃노래는 없었지만 '목포의눈물'이라는 노래가 부두가에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생각이 같은 원장님들이 있어서 함께 차를 렌트하여 땅끝 해남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기로 하였지요. 모임이 12시에 끝났는데 다섯명이 저녁8시까지 쏘다니다가 서울 집에 오니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KTX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간만에 많이 웃고 재미난 여행이었습니다. 일행 중에는 8순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 원장님도 계셨지요. 연세가 드셨지만 곧곧한 정신으로 사시는 분이라 다니는 중에도 절대로 젊은 사람들에게 기대는 부분이 없는 정신이 살아계신 분이셨습니다.
이번에 참석한 회의는 많은 분들이 80대가 되어가는 원장님들이 계시는 모임이라 행동거지가 조신해야 했습니요. 대부분 권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어서 예배와 기도를 많이 드린 귀한 시간이었지요. 열심히 일하다가 곱게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느꼈지요. 저도 그런 세월을 보내고 그런 노년을 맞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신앙으로 아이들을 키워내고 이 사회에 공헌하신 분들이셨습니다.
감사와 찬양과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셨습니다.
대부분 시설도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분들이라 3년마다 받는 평가에서도 상위 그룹이라고 들었습니다. 경륜이 있는 시설의 저력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우리 시설도 54년이 된 시설입니다. 책임감이 새삼느껴져옵니다.
한국복지재단의 전임 차윤근회장님은 88세이십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높아 많은 20대의 부부들이 이혼을 하는데 이들 자녀 중 60% 정도가 아동 시설로 들어와서 시설의 생활을 하게 되는데 천리마를 알아낸 백락처럼 재목을 키우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회복지학과 대학교수로 계시는 분이 얼마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00대학교 교수 박사000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그래도 존경하는 눈빛으로 대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지역사회의 복지관 관장을 겸임하게 되어 인사를 할 때 '000복지관 관장 000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처다보는 눈빛이 약간은 경멸의 눈빛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수님께 '우린 늘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산답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무척 씁쓸했습니다.
가끔씩 언론매체의 뉴스감이 되는 사회적 지탄을 받는 분들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자업자득이 아니냐고 반문 하겠지만 노심초사 맡겨진 사람들을 잘 보살펴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다가 지역사회에 보통의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도록 돕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맞는 분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게 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아픔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삼성복지재단에서 사회의 모범된 분들께 주는 '호암상'을 받으신 지득용원장님은 '부부가 마주보며 서로 사랑하기를 다짐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부부는 결혼하며 마주보기보다는 나란히 앞을 보자고 다짐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아가 된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자신을 헌신해야만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상금으로 퇴소한 자식들이 찾아와 쉴 수 있는 집을 짓는데 사용한다고 하여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회를 기다려봅니다.
오늘 KBS-TV 의 모모 부장이라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월드뉴스지구촌소식'이라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화보집이 나왔으니 들여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설은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그 화보집을 볼 사람들이 없다고 하였더니 누가 장애인들더러 보랬냐고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보라고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원장이 보라는 것입니다.
원장인 저는 그 화보집이 필요가 없다고 하였더니 시설에서 들여놓으면 될 것 아니냐며 막 화를 내는 것입니다. 책을 팔면서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압적인 자세로 들여놓겠을 것을 강요하며, 들여놓지 않다고 하니 화를 내며 무서움을 느끼게 할 수는 없을텐데 전화를 먼저 끊을 수도 없을만큼 화를 내어 두려워서 들고 있었더니 씨근대며 끊는 것입니다. 사회복지시설의 원장은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아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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