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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전의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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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장애란 작성일2007-05-28 15:39 조회7,8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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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봄, MBC 본사 D 스튜디오. 나는 본사에서 OJT중이었고, 당시, 최고의 인기 드라마 '종합병원'팀에 배속되어 있었다. 이재룡, 김지수, 신은경, 구본승 등 신인과 다름없었던 배우들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바로 그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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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를 조금 넘긴 시간. 8평 남짓한 종합편집실에는 20여명의 스텝들이 온 신경을 집중하며 막바지 스튜디오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고, 피곤에 지친 수습사원은 출입구 옆 소파에 앉아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하는 일 없이, 모니터만 쳐다보며 속절없이 기다리는 게 일과인 지라, 하염없이 감기려는 눈꺼플과 사투를 벌이던 그때였다.

비몽사몽을 오가던 어느 순간,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이 내 옆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옆에는 간호사복을 입은 전도연이 가슴에 손을 모은 채, 초조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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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까지 이어지기 일쑤인 스튜디오 촬영 및 제작은 출연자와 스텝들이 동시에 마침표를 찍는 경우가 거의 없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출연 분량이 모두 끝나면, 자연스럽게 스튜디오를 빠져 나가고, 스텝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충 퇴근순서를 보면, 고참 연기자(예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요즘은 스타 연기자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나머지 출연자, 카메라 및 조명스텝, 제작스텝, 연출스텝. 이런 순서로 퇴근한다.

순서에서 알 수 있듯, 연출자의 지시가 없는 한, 출연자가 마지막까지 남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날은 전도연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분량이 모두 끝난 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종편실에서 제작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출자의 지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그때 모니터를 응시하던 전도연의 표정과 눈빛을 잊지 못한다. 자신과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묵묵히 지켜보며, 때로는 환호하고, 때로는 절망하던 그녀의 표정과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던 인상적인 눈빛.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작실의 스텝 누구도 그런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 나중에 조연출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독 전도연만은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아 편집과정을 지켜봤다고 한다. 맨날 보는 일이니, 다들 '그러려니' 하는 거 였다.

그날 이후, 드라마 '종합병원' 팀에서 연수를 받는 내내, 나는 종합편집실에서 전도연과 마주쳤다. 언제나 제작실 한 쪽 구석에서 간호사복을 입은 채, 감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를...

주인공이었던 이재룡은 물론, 청순가련 김지수나, 상큼발랄 신은경, 하물며, 어리버리 구본승 마저도 스타 대접을 받았던 그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녀는 그렇게 묵묵히 성장하고 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과연 누가 가장 빛나는 '별'인지를 생각해보면,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말이 더욱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내가 아는 한, '칸이 주목한 배우 전도연'은 결코 공짜로 얻은 타이틀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배우 전도연'에게 진심이 담긴 박수를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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