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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김승훈 작성일2010-07-15 18:07 조회7,505회 댓글0건본문
[사회]월 504344원, 목숨 부지 ‘최저생존비’
** 최저생계비 체험단 시민 11명 한달생활 돌입 "못살겠네"
"충격적이었죠.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깐 걱정부터 들었어요."
안성호씨(28)는 지난 7월 2일 1년 동안 다니던 대기업에서 퇴사했다. 그리고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 이른바 '달동네'로 이사 왔다. 비록 한 달이지만 열심히 살아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단칸방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 마음이 흔들렸다.
거주비 월 8만6천원 책정
참여연대는 7월 1일 장수마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희망UP 캠페인' 가운데 한 가지인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를 시작했다.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는 대학생 등 일반 시민 8명과 장수마을 주민 3명으로 이뤄진 11명의 체험단이 최저생계비만으로 한 달을 생활하며 최저생계비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하는 캠페인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11명의 체험단은 1~4인 가구로 나뉘어 가구별 최저생계비를 지급 받는다. 각 가구는 정해진 최저생계비로 집세부터 전기세까지 모든 생활을 해결해야 한다. 식사는 대접할 수 있지만 대접 받을 수 없고, 세 끼는 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타인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아서도 안 된다. 오직 최저생계비로만 한 달을 사는 것이 목표이자 규칙이다.
평소 사회복지 분야에 뜻을 둔 안씨는 1년 동안 다니던 대기업을 과감히 그만두고 새로운 출발로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를 선택했다. 경험해 봐야 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안씨는 1인 가구를 배정 받았고, 50만4344원을 지급 받았다. 전달 생활비로 쓴 돈의 절반 수준이다.
첫날부터 시련이다. 당장 먹는 것부터 문제였다. 1인 가구가 하루에 식비로 쓸 수 있는 금액은 약 6000원. 한 끼에 6000원이 넘는 식사를 부담 없이 먹던 안씨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쌀이나 계란, 김치 같은 필수 식료품으로 냉장고를 채웠다. 무더운 날씨에 슈퍼마켓을 지나다가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이 눈에 들어왔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열악한 주거공간도 문제였다. 빗물이 고이는 방은 몹시 눅눅했다. 아침 저녁으로 몸이 찜찜하다. 큰마음 먹고 '물 먹는다'는 제습제를 샀지만 역부족이다. 안씨는 "열악한 주거공간이 불필요한 지출을 하게 한다"면서 "이것 역시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이들의 고충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흘만의 깨달음이다.
빠듯한 살림에 문화생활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보름쯤 지났을 때 생활비가 넉넉하게 남아 있다면 조조영화나 한 편 볼 생각이다. 일단은 근처 공원에서 군것질이나 운동을 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했다.
1주일을 지낸 안씨, 슬슬 최저생계비의 문제점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최저생계비 책정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안씨는 "최저생계비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삶의 질이 최악인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스스로 정해 놓은 최소한의 지출만 한다면 최저생계비로도 살 수는 있다는 것. 다만 예상외의 지출, 예를 들어 몸이 아프거나 목돈이 필요한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안씨는 "나처럼 젊고 건강한 사람이 한 달을 지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몇 년을 최저생계비로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이쯤 되면 최저생계비가 아니라 최저생존비"라고 말했다.
최저생계비는 3년마다 실제 계측을 통해 기준이 정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매년 9월 1일 보건복지부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물가인상률 등을 고려해 이듬해 최저생계비를 결정한다. 이렇게 결정된 최저생계비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및 급여 기준으로 활용된다.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올해 3년 만에 계측이 실시되기 때문에 현실이 왜곡된 최저생계비 수준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계측은 물론 최저생계비 책정에 현실성이 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 팀장은 "최저생계비를 책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고려해 심의, 의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여부·주거상태 등 반영 안돼
"한번 좀 와서 봤으면 좋겠어요"
4인 가구를 체험 중인 박은지씨(21·동덕여대 3년)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배어 나왔다. 지난 1주일 동안 다수의 정치인이 다녀갔지만 정작 중요한 사람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이 직접 와서 보고 경험해야 달라질 것 같은데 소식이 없다"며 아쉬워 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박씨에게 이번 캠페인 참여는 더없이 좋은 경험이다. "책으로만 알던 사실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는 박씨가 지적한 문제점은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해진 최저생계비를 100%를 다 받는 인원은 거의 없으며, 온전히 받는다 해도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은커녕 근근이 살아가기도 벅차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씨는 "실제로 쪽방촌에 가 보니 월세가 20만원인데 최저생계비에는 8만6000원으로 책정돼 있다"면서 "책정하는 이들이 현장에 나와서 현실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씨의 한 달 '동거인' 김만철씨(24·상지대 경영학부 3년)도 거들었다. 김씨는 "우리 체험이 실제 기초생활수급자의 삶을 대변하지는 못해도 이 경험이 잘 알려져서 최저생계비 책정의 문제점이 고쳐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최저생계비에 대해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인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선정과 급여의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는 책정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에 따르면 ▲최저생계비의 지속적인 상대 수준 저하 ▲아동, 장애, 노인가구 등 가구별 특성 미반영 ▲지역별 특성 미반영 ▲비계측연도 최저생계비 산출과정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도시근로자 가구의 평균 소득상승률은 7.1%다. 반면에 같은 기간 동안 최저생계비의 평균 상승률은 3.8%에 지나지 않는다. 최저생계비의 상승폭이 평균 소득 상승폭보다 작다는 의미로, 최저생계비는 평균 소득과의 격차를 계속 벌인 셈이다.
최저생계비가 처음 도입된 2000년에는 중위 가구 소득의 43% 수준이었다. 그러나 올해 현재는 33%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2020년에는 23%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허 교수는 "최저생계비와 평균 소득 간 간격이 일정하게 유지돼야 생활이 안정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가구별, 지역별 특성이 미반영된다는 점도 문제점이다. 현재 최저생계비는 중소도시, 신체가 건강한 이들을 기준으로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의 최저생계비(1인 기준)에 필요한 비용은 장애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뇌병변 경증은 11만8959원, 지적장애의 경우 105만9607원이 각각 더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추가 비용은 최저생계비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별 물가의 편차 역시 마찬가지다. 중소도시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싸고, 인구가 많은 대도시 기초수급자들은 더 큰 생활고에 시달린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3년에 한 번 계측 조사를 실시한다. 즉 3년에 한 번 주거비나 식료품비 등 비용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비계측연도에는 물가상승률만 고려해 최저생계비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최저생계비가 현실성을 잃는다는 지적이다.
2007년 최저생계비 계측 당시 품목을 예로 들어 보자. 4인 가족 외식비는 1년 2회로 2만8000원이 책정됐다. 양말은 1인당 1년에 두 켤레, 아동 운동화는 2년에 한 켤레, 휴대전화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된다. 현실이 무시된 채 일괄적으로 계측되는 것이다.
허선 교수는 "실직은 물론 빈곤까지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복지의 기본"이라면서 "상대적 수준과 현실성을 고려한 최저생계비 책정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출처 : 경향신문 <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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