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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판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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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신현욱 작성일2008-05-15 03:27 조회6,8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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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법 판사가 어린 아들이 저지른 잘못이라고 단정, 아들을 '회유·협박'해 '허위 자백'을 받았던 부끄러운 경험담을 인터넷에 공개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마용주(38) 서울중앙지법 형사 공보판사. 마 판사는 14일 서울중앙지법 인터넷 홈페이지와 대법원 블로그에 이 같은 내용을 글을 올렸고 이날 오후 4시 현재 블로그 방문객만 5863명에 달할 정도로 네티즌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다음은 마 판사가 들려주는 경험담이다.
6년 전 아들이 7살 때의 일이다. 문득 아들의 방에 들어갔을 때 아들은 무척 당황하며 책상 위에 무엇인가를 두고 뒷걸음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스탠드의 목이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나는 아들을 침착하게 타일렀다. 왜 스탠드의 목을 부러뜨렸느냐며 왜 당당하지 못하고 도망가려 했느냐고 질책했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는 아들의 변명에 화를 참으며 조용히 타일렀지만 아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에게 무릎을 꿇고 손을 들으라는 벌을 줬지만 아들은 계속 모르는 일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마침내 나는 아들의 자존심마저 건드리고 말았다. 그 순간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인정했다. 내친김에 나는 사건의 전말을 구체적으로 자백받았다.

나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들을 뜨겁게 포옹하면서 모든 잘못을 용서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참으로 용감한 행동이라고 칭찬까지 하면서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러나 논리와 설득으로 아들의 자백을 받았다는 나의 뿌듯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녁 무렵 아내가 스탠드를 고치고 있는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청소하다가 스탠드를 떨어뜨려 목이 부러졌어. 고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순간 나는 큰 망치로 뒤통수를 한대 얻어 맞은 느낌을 받았다. 나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던 아들의 상황이 떠올랐다.

아빠는 판사님이에요. 뭘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훌륭한 사람이래요. 아빠는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숨기는 것을 제일 싫어해요. 사람은 정직해야 한데요. 그런데 오늘은 아빠가 보통 때랑 달라 다른 사람 같았어요.

유치원을 다녀왔는데 책상 위에 스탠드 목이 부러져 있는 거예요. 처음엔 엄청 우스웠는데 목을 제자리에 붙여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장난감 조립은 좀 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끼우면 되나 하고 궁리하는데 아빠가 갑자기 들어오시는 거예요.

그만 깜짝 놀랐지 뭐예요. 왜 어른들은 노크도 없이 불쑥불쑥 들어오는 거예요. 아빠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는 스탠드 목을 왜 부러뜨렸느냐고 화를 내시는 거예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화만 내셨어요.

아빠가 화를 낼수록 머릿속은 멍해지고 목소리는 기어들어갔어요. 아빠는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며 화를 내고 벌을 주셨어요. 잘못을 인정해야 착한 어린이라고 하시면서. 혼나고 벌받는 것도 싫었지만 저는 착한 아들이 되고 싶었어요.

스탠드를 부러뜨렸다고 거짓말을 하자 아빠가 너무 좋아하시면서 착한 어린이라고 칭찬해주셨어요. 덩달아 가지고 놀다가 부수었다는 거짓말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죠. 아빠한테 칭찬을 받았는데….

당시 마 판사는 잠든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이 낮에 흘린 눈물만큼의 고통보다 더큰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마 판사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어린 아이들을 어른들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마 판사는 "그 사건 이후로 모든 피고인들 상대로 시비를 가리기 위해 예단을 갖고 일방적으로 따져 묻기 보다는 피고인들이 자유롭게 진술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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